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05인 사건 (문단 편집) === 체포된 인물 및 인사 === 이 사건에서 체포된 대표적인 인물로는 [[신민회]] 간부인 [[윤치호]], [[양기탁]], [[이동휘]], [[유동열]] 등이 포함되었으며 이외에도 백범 [[김구]] 등도 포함되었다. 암살 사건 조사를 핑계로 대거 체포한 인사들은 대부분 [[개신교]]인이었는데 기소된 105인 사건 때 드러난 경찰 기록에 따르면 기소자 123명 가운데 [[장로회|장로교인]]이 96명, [[감리회|감리교인]]이 6명, [[천도교|천도교인]]이 2명, [[가톨릭|천주교인]]이 2명이었다고 한다. 한편 [[이승훈(1864)|이승훈]]은 [[용산역]]에서 기차를 타던 중에 검문 중이던 [[일본제국 경찰]]에게 체포되었다. [[이승만]]은 당시 [[미국인]] 선교사들의 지원 하에 [[미국]]으로 망명하였다. 같은 출신인 [[김규식]]은 [[만주]]에 인삼 장사를 한다는 사유로 [[몽골]]로 피신했다가 이후 [[중국]] [[상하이]]에 있는 [[대한민국 임시정부]]에 합류했다. [[이승훈(1864)|이승훈]], [[양기탁]], 이갑, 유동열, [[이동휘]], [[이동녕]], [[김구]], [[김규식]], [[이승만]]은 모두 개신교인이었다. [[윤치호]]는 이후 [[일본 제국|일제]]의 압박으로 결국 친일파로 변신하여 [[총독부]]로부터 작위를 받게 되었지만 1945년 해방되자 친일파로 지목받았고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드러누웠다가 그대로 병사했다.[* 워낙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해방 이후부터 권총 자살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유족들의 말에 의하면 평소에도 지병이 있었다고 한다. 마쓰모토 세이초의 [[북의 시인]]에서는 등장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암살 의혹도 제기하기는 한다.] 백범의 동지였던 [[김홍량]]은 가석방 후 192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인 친일파로 변절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